작가적 여성상과 로맨스 철학에 관한 선언문
1. 이 선언문의 목적
이 문서는 특정 작품이나 특정 인물에 관한 기획서가 아니다.
이 문서는 내가 어떤 여성을 쓰고 싶은지, 어떤 사랑을 아름답다고 믿는지, 어떤 로맨스를 반복해서 구축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 반복이 어떤 작가적 소명으로 이어지는지를 정리하기 위한 선언문이다.
나는 소설가로서 이야기의 재미를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 독자는 선언을 읽기 위해 소설을 펼치지 않는다. 독자는 인물을 사랑하고, 사건을 따라가고, 장면에 몰입하고, 다음 회차를 기다리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야기가 사람의 감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자신이 반복해서 사랑한 이야기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여자를 멋있다고 느끼는지, 어떤 사랑을 이상적이라고 믿는지, 어떤 결말을 통쾌하다고 받아들이는지, 어떤 삶을 동경하게 되는지는 수많은 이야기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여성이 독자에게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기를 바란다.
수동적이고 온순하며, 주변 남성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운 여성성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자기 욕망이 있는 여자도 아름답다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여자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자기 세계를 가진 여자는 남자의 세계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지킨 채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런 여자가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모두 획득하는 이야기가 충분히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며 대중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세계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그런 세계를 쓰고 싶다.
이것이 내 직업적 소명이다.
2. 내가 거부하는 여성상
나는 사랑받기 위해 자기 세계를 축소하는 여자를 이상으로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여자가 순종적이기 때문에 보상받고, 온순하기 때문에 선택받고, 남자의 상처를 무한히 받아내기 때문에 사랑받는 구조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모든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강해야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조용한 여자, 부드러운 여자, 헌신적인 여자, 보호받고 싶은 여자 역시 쓸 수 있다. 강함은 늘 큰 목소리나 공격성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성의 미덕이 순응으로만 정의되는 세계를 거부한다.
여자가 자기 욕망을 가지면 이기적이라고 불리고, 자기 재능을 증명하려 하면 독하다고 불리고, 사랑보다 자기 일을 먼저 생각하면 차갑다고 불리고, 남자의 기대를 벗어나면 벌을 받는 세계를 그대로 긍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세계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세계를 옳은 것으로 남겨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그 세계 안에서 한 여자가 어떻게 자기 자리를 되찾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3. 내가 쓰는 여자
내가 쓰는 여자는 겉으로 약해 보일 수 있다.
창백하고, 고요하고, 위태로워 보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억압받거나, 가문과 시대와 구조에 의해 밀려날 수 있다. 사랑받지 못했거나, 사랑받았더라도 안전한 방식으로 사랑받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은 내부가 강하다.
그 강함은 단순한 성격의 세기가 아니다.
이 여자들에게는 심지가 있다. 자기 일을 향한 열정이 있다. 도덕적 기준이 있다. 자기 재능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
무엇보다, 이 여자들에게는 남자보다 먼저 존재하는 자기 세계가 있다.
그녀에게는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증명하고 싶은 재능이 있다.
되찾고 싶은 이름이 있다.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다.
무너뜨리고 싶은 구조가 있다.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을 때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남자는 그녀의 얼굴이나 애교나 약함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가진 강인함과, 그 강인함 속에 숨겨진 유약함과, 그럼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욕망을 본다.
내가 쓰는 여자는 남자 없이도 주인공이다.
그러나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세계는 더 깊어진다.
4. 내가 쓰는 사랑
내가 쓰는 로맨스는 여자의 세계를 남자의 사랑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남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여자의 욕망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사랑이 시작된다고 해서 여자의 전쟁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남자의 품이 안전하다고 해서 여자가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서는 안 된다.
내가 쓰는 사랑은 여자의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랑이 아니다.
내가 쓰는 사랑은 여자의 꿈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랑이다.
남자는 처음부터 완벽한 조력자가 아닐 수 있다. 그는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막을 수 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능력을 배제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위험을 대신 판단하려 할 수 있고, 과거의 상처와 오해 때문에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남자는 결국 여자의 욕망 앞에 굴복해야 한다.
그 굴복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인정이다.
너는 내가 지켜야 하는 약한 존재만이 아니다.
너는 네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너는 네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너는 네 세계를 포기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네 세계를 없애는 사람이 아니라, 그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
내가 쓰는 남자의 헌신은 여자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자의 세계를 인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5. 내가 창조하고 싶은 세계관
나는 독자가 내 작품을 읽고, 주도적인 여자를 부담스럽거나 무섭거나 벌받아야 할 존재로만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독자가 자기 일을 가진 여자를 매력적이라고 느꼈으면 한다.
자기 야망이 있는 여자를 아름답다고 느꼈으면 한다.
사랑보다 먼저 자기 삶을 가진 여자를 차갑다고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남자의 기대에 꼭 맞춰지지 않는 여자를 결핍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여자가 사랑까지 얻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여자는 자기 세계를 가져도 된다.
여자는 자기 욕망을 가져도 된다.
여자는 사랑받기 위해 작아지지 않아도 된다.
여자는 자기 능력을 증명하면서도 사랑받을 수 있다.
여자는 남자의 헌신을 받으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여자는 보호받을 수 있고, 동시에 보호할 수 있다.
여자는 사랑받을 수 있고,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이 세계관을 반복해서 쓰고 싶다.
설교로서가 아니라, 매력적인 이야기로.
구호로서가 아니라, 독자가 사랑하게 되는 인물로.
당위로서가 아니라, 다음 회차를 기다리게 만드는 감정으로.
6. 내 로맨스의 기본 구조
내가 반복해서 끌리는 로맨스 구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자는 이미 자기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남자를 만나기 전부터 자기 삶의 중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의 욕망은 사랑의 장애물이 아니라, 사랑의 핵심 조건이다.
둘째, 남자는 처음에 여자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그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녀를 보호하려 하고, 막으려 하고, 오해하고, 자기 방식으로 구하려 한다.
셋째, 여자는 능력으로 자기 자리를 증명한다.
그녀는 남자가 허락해서 자리를 얻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과 노동과 버팀으로 자기 자리를 쟁취한다.
넷째, 남자는 여자의 욕망 앞에 굴복한다.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세계를 줄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욕망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준다. 이때 남자의 사랑은 비로소 진짜 헌신이 된다.
다섯째, 여자의 욕망을 인정하는 상징이 주어진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여자의 욕망을 인정하는 물리적 증거다. 그녀가 숨어서 하던 일을 더는 숨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자리일 수 있고, 그녀가 죄처럼 배운 재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물건일 수 있고, 그녀가 자기 세계를 계속 지킬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일 수 있다.
그 상징은 말한다.
이제 네 욕망은 죄가 아니다.
이제 너는 숨어 있지 않아도 된다.
이제 너는 네 이름으로 네 자리에 앉아도 된다.
여섯째, 여자는 남자를 구한다.
내가 쓰는 여자는 남자에게 구원받기만 하지 않는다. 반드시 한 번은 자기만의 무기로 남자를 구한다.
그 무기는 작품마다 달라질 수 있다.
법일 수 있다.
총일 수 있다.
말일 수 있다.
노동일 수 있다.
재능일 수 있다.
명예를 버릴 각오일 수 있다.
자신이 평생 증명하려 했던 능력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는 점이다.
이 구조가 있을 때, 로맨스는 한쪽 방향의 보호나 헌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의 구원자가 된다.
7. 내가 믿는 여성 주체 서사
나는 여자의 욕망이 사랑의 장애물이 아니라 사랑의 이유가 되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자기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가 외로워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가 그 일을 포함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야망을 가졌기 때문에 벌받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야망이 끝내 그녀를 살리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살리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강하기 때문에 사랑받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 강함 때문에 더 깊이 사랑받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보호받는 순간에도 주체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사랑받으면서도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를 믿는다.
여자가 마지막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이야기를 믿는다.
내가 쓰는 여성 주체 서사는 남자를 배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남자가 여자의 세계를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다.
남자가 여자의 욕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욕망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남자가 여자를 자기 세계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세계 앞에 서서 그 세계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인정하는 이야기다.
8. 시장과 독자에 대하여
나는 시장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장르소설은 독자와 만나는 글이다. 독자가 다음 회차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하고, 댓글을 달고 싶게 해야 하고, 결제하고 싶게 해야 한다. 상업적 매력은 작가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자기 세계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 필요한 통로다.
그러나 나는 시장에 맞추기 위해 내 여성상을 축소하고 싶지 않다.
내가 믿는 것은 이것이다.
능력 있는 여주가 팔릴 수 있다.
야망 있는 여주가 사랑받을 수 있다.
자기 세계가 있는 여자가 로맨스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남자의 사랑과 자기 욕망을 동시에 획득하는 여자에게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대중문화 안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상형이 될 수 있다.
이 구조의 강점은 분명하다.
여성 캐릭터가 강하다.
로맨스가 단순 감정선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구조와 결합된다.
남자의 헌신과 여자의 반격이 모두 있어 감정적 보상이 크다.
여자의 욕망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선명하다.
무엇보다, 작가가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지가 분명하다.
독자는 그 반복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 가치관이 자신의 욕망과 만나는 순간, 충성 독자가 된다.
9. 내가 독자에게 주고 싶은 감각
나는 독자가 내 작품을 읽고 이런 감각을 느끼기를 바란다.
이 여자는 남자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구나.
이 여자는 자기 욕망이 있구나.
이 여자는 사랑받기 전부터 이미 주인공이구나.
남주는 이 여자를 구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여자에게도 구원받는구나.
이 여자는 보호받을 수 있지만, 보호받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이 여자는 마지막에 반드시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구나.
그리고 가능하다면, 독자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도 내 세계를 가져도 되는구나.
나도 내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도 사랑 때문에 작아질 필요는 없구나.
내가 강하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구나.
나의 재능과 야망과 고집과 일과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이유가 될 수도 있구나.
이 감각을 주는 것이 내가 소설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나는 설교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매력적인 여자를 쓸 것이다.
독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자신의 세계를 잃지 않은 채 사랑을 획득하는 장면을 쓸 것이다.
10. 반복에 대한 원칙
나는 이 구조를 반복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표면을 반복하면 자기복제가 되고, 핵심을 반복하면 시그니처가 된다.
반복해도 되는 핵심은 다음이다.
여자에게 남자보다 먼저 존재하는 욕망이 있다.
남자는 처음에 그 욕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능력으로 자기 자리를 쟁취한다.
남자는 여자의 욕망 앞에 굴복하고, 그 욕망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여자는 후반부에 자기만의 무기로 남자를 구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구원자였음을 깨닫는다.
반복하면 위험한 것은 다음이다.
남자가 과보호만 오래 지속되는 구조.
여자가 계속 증명만 하고 감정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
남자의 초반 통제나 학대가 너무 길어 회복이 어려운 구조.
여자의 강함이 너무 건조해 독자가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
여자의 욕망과 상징적 오브제가 작품마다 달라지지 않는 구조.
그러므로 매 작품마다 반드시 새롭게 답해야 한다.
이 여자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여자를 막는 시대와 구조는 무엇인가.
남자는 왜 처음에 그 욕망을 막거나 오해하는가.
여자는 어떤 능력으로 자기 자리를 증명하는가.
남자는 어떤 방식으로 그 욕망을 인정하는가.
여자는 마지막에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가.
이 질문들에 새롭게 답할 수 있다면, 반복은 약점이 아니라 작가적 세계관이 된다.
11. 작가 선언
나는 남자의 사랑으로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여자를 쓰지 않는다.
나는 이미 자기 세계를 가진 여자를 쓴다.
자기 욕망이 있는 여자.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여자.
자기 재능을 죄처럼 배웠으나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여자.
나는 수동적이고 온순하며 남성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만이 여성의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세계를 그대로 긍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세계를 통과해, 다른 여성성을 창조하고 싶다.
주도적이고, 자기 세계가 있고, 자기 욕망을 가진 여성성.
강하지만 외로운 여성성.
사랑받기 위해 작아지지 않는 여성성.
사랑받으면서도 자기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여성성.
나는 그런 여자를 독자들이 이상적이라고 느끼게 만들고 싶다.
그 여자가 차갑고 독한 여자가 아니라,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다.
나는 약해서 보호받는 여자가 아니라, 너무 오래 강해서 이제는 누군가가 곁에 서야 하는 여자를 쓴다.
나는 남자가 여자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의 꿈을 알아보고, 그 꿈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주는 이야기를 쓴다.
나는 여자가 사랑 때문에 자기 욕망을 버리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사랑을 통해 자기 욕망을 더는 죄로 여기지 않게 되는 이야기를 쓴다.
나는 남자가 여자를 구원하는 이야기만 쓰지 않는다.
여자도 남자를 구하는 이야기를 쓴다.
내가 쓰는 여자는 보호받을 자격만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힘도 있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약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녀의 욕망 앞에 무릎 꿇고, 그녀의 세계에 자리를 마련해주며, 결국 그녀에게도 구원받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사랑은 여자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내가 쓰는 사랑은 여자의 세계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것이 내 로맨스다.
이것이 내 여성상이다.
이것이 내 작가적 정체성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소설가로서 쓰고 싶은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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